타문화권 선교연구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 인류학』- 문화 차이와 신임선교사 -

good-welchs0070 2025. 7. 3. 14:43

타문화권 선교연구

 

신임 선교사들은 대부분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면 여행의 흥분에 빠지고 이국적 풍경을 보며 설렌다. 그러다가 점차 현실감을 찾기 시작한다. 이제 이곳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고향임을 인식한다. 이러한 변화가 생길 때 신임 선교사들은 핵심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문화 차이에서 오는 문제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문화를 창조해 왔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양식의 집을 지으며 다른 언어를 말하고 다른 방식으로 서로 인사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더 엄청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세상을 보지만 각기 다른 문화적 안경을 끼고 세상을 인식한다.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연구는 문화마다 시간을 얼마나 다르게 인식하는지 보여 준다. 모든 사람이 시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관점으로 시간을 인식한다고 추측하기 쉽지만, 홀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미국인은 시간 엄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에게 정시란 약속 시간 전후 5분간을 의미하며 그 시간 안에 도착해야 시간을 지켰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이집트 문화에서 정한 시간에 나타나야 하는 사람은 하인뿐이다.

새로운 문화에 들어설 때는 기대에 가득 차서 그다지 겁내지도 않는다. 선교사 임명장을 받을 즈음에는 개인 만족도 수준이 매우 높다. 꿈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낯선 도시에 착륙할 때까지도 만족도는 여전히 높다. 정말로 선교지에 도착한 것이다. 꿈같은 일이다. 식당에 들러 점심을 주문한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놓인 접시를 보니 겨우 절반 정도만 음식처럼 보인다. 배가 고파서 시장에 들러 오렌지를 사려고 한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우리가 뭘 달라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가게 주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고, 익숙하지 않은 동전들도 도대체 얼마짜리인지 알 수가 없다. 순간 모든 사람이 우리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이곳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문화 충격이란 어릴 때부터 배워 온 모든 문화적 틀과 지침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때 경험하는 방향 감각상실을 말한다.

 

새로운 문화에서 경험하게 되는 첫 번째 충격은 소통 불능이다.

이방인으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주요 수단을 잃어버린다. 언어 공부를 시작한 많은 해외 선교사가 학습을 거부하다가 결국 집어치우고 만다. 거부하는 양상은 점점 공부를 안 하거나 점점 모국어로 일하려는 것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실제로 몸에 질병이 생겨 학습을 못하기도 한다. 언어 충격은 사람들을 악순환에 빠뜨릴 수 있다.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고, 어울리지 못하면 더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충격은 일상생활의 변화이다.

본국 문화에서는 효율적으로 수행했던 것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아주 단순한 일도 정신적 부담이 크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새로운 문화에서 지내는 첫해는 종종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곳에 온 목적은 사역인데 그 일에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좌절은 더 커진다. 성경 번역이나 설교, 교육, 상담 등의 사역은 거의 할 수 없다.

세 번째 충격은 관계 변화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본국 문화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에서는 더욱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워 보인다. 본국에서는 직위 학위, 다양한 집단의 회원 자격 등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는 이 모든 옛 정체성이 사라진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네 번째 충격은 이해력 상실이다.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은 문화를 배우고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전의 지식 대부분은 새로운 문화에서 쓸모없어지거나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누구나 좌절한다. 삶을 통제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혼란함에서 생기는 의미 상실로, 문화 충격에서도 가장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현실 감각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석 번째 충격은 정서와 평가의 혼동이다.

문화 충격에는 인지적인 면도 있지만, 정서와 평가의 방향 상실도 포함된다. 정서적 차원에서는 상실감과 혼동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또한 타문화 상황에서 발생하는 좌절감에 부딪힌다. 외국에 왔다는 초기 흥분이 지나고 나면 향수병에 시달리고, 익숙하지 않은 관습에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기대한 것만큼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곁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더디기 때문에 속이 상한다.

 

그렇다면 문화 충격의 증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문화 충격이 지닌 진짜 문제는 우리 스스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왜곡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 인식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스트레스 유발을 시킨다.

우리는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간다. 사실 스트레스 없이는 삶에서 누리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지나친 스트레스는 파괴적일 수 있다. 스트레스는 축적되며, 스트레스를 야기한 사건이 지나가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신임 선교사들은 다른 문화로 이동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신체 질병까지 나타난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낳는 한 가지 공통된 결과는 신체 질병이다. 스트레스는 또한 집중력을 떨어뜨려서 쉽게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외국에서 얻은 질병은 염려를 더할 뿐이다. 특히 이전과 같은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종종 낯선 질병과 위험을 직면하며, 생명이 위협받기도 한다.

그리고 심리적, 영적 우울증이 발생된다.

스트레스가 낳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보통 우울증과 실패감이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선교사가 여유 있게 쉰다는 게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안타까운 사실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수록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실패의 두려움 자체가 에너지를 다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문화 충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다면 충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앞으로 할 사역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는 긍정적 경험으로 그 충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처음 한두 해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중요한 시기다.

관광객 단계

새로운 문화에 보이는 첫 반응은 매력이다. 이런 기간은 환경에 따라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지속된다.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온 선교사에게 이 기간은 새로운 문화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힘겨운 여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각성 단계

이 시기에 좌절과 염려가 생겨난다. 그리고 외로움도 느낀다. 그 결과, 각성이 일어난다. 이 단계는 문화 충격에서 위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단계를 거치는 동안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문화에서 살아가는 법을 습득하는 된다.

회복 단계

이 단계에서 현지인이나 그 문화와 관계를 맺는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이때 형성된 적응 형태가 주로 이후에 그대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아직 안락한 일상생활로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어려움에 민감하며, 이 단계에서는 기꺼이 사람들과 동일시되려 하고 현지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적응 단계

문화 충격의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문화가 편하게 느껴지는 때다. 이제는 아무 염려 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법을 충분히 배웠다. 현지인들과 우정을 맺어 가고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수 있다.

역문화 충격

조사에 따르면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한 사람일수록 원래 문화에 재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면에서 본국 문화에 재적응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재적응할때에는 본국 사회를 외국 사회처럼 보고, 외국 문화에 진입하던 방식대로 진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정도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할 때 혼동을 경험한다. 어쨌든 모두가 경험과 인내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문화 충격은 문화 차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제로 그 충격을 재미있고 성장을 위한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교사의 사역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방법을 통해 현지인들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문화 충격을 최소화하는 첫째 방법은 자신의 염려를 인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겁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염려란 불안한 느낌,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한 걱정이다. 문화 충격의 가장 파괴적인 부분은 구체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염려다. 그러므로 염려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그 염려를 숨기거나 없어지기만 바라기보다는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문화 충격을 최소화하는 둘째 방법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은 두렵고 괴로운 시련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신나고 새로운 경험일 수도 있다. 문화는 참여할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이 현지인과 격리되는 방식으로 고착되기 전에 즉시 문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문화를 배우면서 현지 사회의 한구성원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문화 충격을 최소화하는 셋째 방법은 신뢰를 쌓아 가라이다.

현지인들은 선교사를 신뢰할 때에만 그가 하는 말을 듣는다. 신뢰 형성은 우리가 섬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수용에서 시작된다. 수용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사랑할 때 시작된다. 신뢰를 쌓아 가는 데는 편견 없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은 쌍방향 적이다.

문화 충격을 최소화하는 넷째 방법은 스트레스를 해결하라

문화 충격을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은 되도록 스트레스를 줄여 가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파괴적으로 커지기 전에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에 맞는 목표를 세우라 - 본국 문화에서는 잘 적응된 사람의 기대치가 성취도보다 약간 높은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문화에서는 이 둘 사이의 간격이 심각하게 커진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 실제 행하는 것 사이에서 생기는 커다란 불일치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지 말라 -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적절한 관점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현재의 일들은 평생의 사역을 내다보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계획을 좀 느슨하게 세우고 자신의 생활 양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일에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듬을 늦추라 - 리듬을 잠시 늦춘다는 것은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을 시기적절하게 조절해 준다. 즉 과감히 새로운 경험으로 뛰어 들어야 할 때가 있고,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그런 경험을 피해야 할 때도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회피하기보다는 조절하는 일이 필요하다.

짐을 서로 지라 - 선교사는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가 느끼는 부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커다란 스트레스의 부산물인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권면에는 양면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어야 하지만, 내 짐도 나누어 그들이 내 짐을 감당해 줄 수 있게 해야 한다.

 

결론

처음 한두 해 동안은 문화 충격이 우리 관심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화 충격을 통해 그 사회에서 우리가 할 사역의 성격과 효율을 규정해 줄 관계 형태와 태도를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화에 진입할 때 생기는 일들을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그들을 구분하는 장벽을 헐어야한다. 이 교훈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인 사랑에 이미 담겨 있는 것이다.

 

<심화된 비평적 소견>

타 문화권으로 선교를 나간 신임선교사가 격게 되는 문화 차이로 인한 어려움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잘 되어있지만 그 가족들, 즉 자녀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 자녀들과 가족들은 분명한 문화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를 경험하게 될 때 선교사, 즉 사명으로 선교를 하는 신임선교사의 시각이 아닌 일반 성도들의 마음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선교지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복음 또한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언어로서의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의도에 선교사 가족 및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 신임선교사 가족들에게 필요하고 공감이 가능한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